본문 바로가기

UT/썰 (백업)

언다알피 (알파인) 썰북 FOMALHAUT



 본래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나왔어야 할 알파인 썰북 원고입니다. 이런저런 일이 겹쳐 발간이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 지금까지 작성한 원고를 전체 공개합니다. 

 분량이 제각각이며, 정제되지 않은, 구어체와 문어체가 혼용된 문장이 많습니다.

 언다인과 알피스 모두에게 성별 중립 대명사 '그'를 사용합니다.




_ 언다인의 갑주에 워터폴의 풍경을 새기는 알피스


 언다인의 갑주에 지금까지의 모험담을 아로새겨 주는 알피스가 보고싶다.

 로봇을 만들어낼 정도로 금속 가공 기술 뛰어난 만큼, 그림 새겨 주는 레이저 장치 만들어서 잠시 수리 맡긴 언다인의 갑주 뒷면에 워터폴의 풍경을 하나씩 은으로 새기기 시작하는 알피스. 비록 육신이 쇠하더라도 갑주만은 남아 주리라 염원하며 언다인의 이야기를 새겨나가기 시작할 듯.

 척추를 지킬 흉갑의 정중앙은 워터폴의 운하가 가로지르고 있고, 그 곁으로 메아리꽃과 빛나는 크리스탈과 다리들이 놓이고, 심장을 등진 곳에는 갑옷의 주인이 서 있는 바로 그 산과 휘몰아치는 기류를 음각한다. 양 각반의 끝에도 섬세한 물의 흐름이나 바람을 최대한 닮은 물결 무늬를 그려내며, 실제와 추상이 조합된 갑주는 지상의 인간들이 썼다는 천문도와 비슷한 의미를 지닐 것. 검푸른 갑옷 위에 세심한 은색으로 채워넣는 상징들은 꼭 태초의 인간들이 별자리를 만들던 것과 같다. 아무 의미도 없던 밤하늘에 뜬 작은 별조각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듯이, 갑주 위에 무늬를 새기는 레이저의 시린 반짝임은 신성의 탄생과도 같으리.

 알피스는 도안을 그릴 때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빛나는 상징과 이야기들로 채워나가야 할 언다인의 갑주에, 자신과 만난 쓰레기장과 그 심연을 새겨넣어야 할지에 대해. 빛나는 창과 그간 모은 인간의 영혼과 언다인의 용맹, 기품, 의지를 채우기에도 거대한 갑주는 너무 좁은 것 같아서. 결국 쓰레기장은 도안에 안 넣고 남은 부분들만 각인한 뒤 언다인에게 가져갔는데, 한참 동안 말끔한 은빛 선에 감탄하던 언다인이 이상한 걸 먼저 알아내지 않을까 싶다. 너무 의연하게, 꼭 지도에서 빠진 것을 말하듯, 쓰레기장을 왜 넣지 않았냐고 물어볼 언다인. 알피스는 한참의 변명 끝에 늘 그랬듯 자신과 만난 것은 언다인의 영웅담에 기록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언다인은 그 말에 되려 목소리를 높일 것 같다. 제 이야기 속 풍경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빛나는 길도 바위산도 아닌 그 쓰레기장이었다고, 무척이나 서툴고 정제되지 않은 말로.

 알피스는 다시 언다인의 갑주를 가져가고, 이번에는 오른손의 건틀릿에 쓰레기장의 풍경이 있을 것 같다. 한때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던 회오리치는 심연과 함께, 둘이 함께 보았던 인간의 물건들이 가득 밀려온 이름 없는 집결지.

 그 갑옷의 주인이 더이상 기사가 아니라서 방치했건, 이제 그 갑옷을 입을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건 간에, 붉게 녹이 기어오른 영웅담은 그 갑옷 속에 마지막까지 아로새겨진 채 남았으면 한다. 한 괴물의 것인 동시에 워터폴 그 자체의 유구한 이야기가.




_ 몰살 루트 기반, 갑옷의 형태로 되살아난 언다인


녹아버린 몸이 다시 형체를 얻는다면, 그것의 최후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이미 죽어버린 언다인이 꼭 움직이는 갑주와 같은 형상으로 재구성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입었던 갑옷들을 이리저리 짜맞춘 과도기적 형태의 갑옷을 입고, 또는 그 갑옷 자체가 되어서. 죽음의 문턱에서 퇴색한 위풍은 되려 흉물스럽게 보이겠지만, 되살아난 언다인은 그러한 모습으로도 제 뒤틀린 창을 들고 워터폴을 지키려고 했다. 이미 텅 비어버린 워터폴의 물소리 사이로 거칠게 울려퍼지는 쇳소리 같은 발걸음은 인간이 지나간 그곳만을 배회하며, 복수의 목소리를 높이는 듯 했다. 한때의 폭설, 한때의 소나기. 그리고, 한때의 영웅.

 알피스는 그 '이상 현상'의 실체를 알고 있다. 모든 일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그는 감시 카메라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어째서. 애초에 재가 된 괴물이 돌아올 수 있었나? 무척이나 그립던 그 목소리는 텅 비어버린 물의 도시에서 처창히 울려퍼지고, 영웅은 제 눈에 들어온 인간 크기의 모든 것에 창을 들이밀었다. 그 푸른빛은 깜부기불마냥 희끄무레하게 빛나다 이윽고 자취를 감춘다. 제 무력함에 분노했는지, 그는 때때로 신경질적으로 제 발을-또는 갑주장화를- 구르곤 했다. 알피스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은 틀린 것이었다. 제 녹아내린 갑주에 올라간 알피스의 손에, 언다인은 분개하기를 멈추었으므로.

 "언다인. 돌아가자. 핫랜드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겠지만, 알피스는 무척이나 담담한 목소리로 언다인, 또는 언다인이라 확신한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언다인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꼭, 네가 와 주리라 믿었던 것처럼. 이렇게 뒷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알피스가 무언가를 향해 앞서 가는 날이 언젠가 왔으면 했다. 텅 빈 곳에서 단 둘만이 걸음을 함께하는 일도, 때로는 제가 알피스의 손길에 맥없이 끌려 가는 일도 있었으면 하는 별 것 아닌 상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언다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결국 입 -또는 목소리를 내는 그것- 을 다물고 있었을 뿐.

 알피스의 연구소까지 가만히 따라온 언다인은 인간이 떨어지기 전에 있었던 몇몇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양 행동했다. 가령,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아이스크림 기계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던지. 비록 제 육신은 이미 변성된 갑주와 하나되었으나, 때때로 남아 있는 기억과 감각의 공백들을 제외한다면 언다인은 그가 사라지기 전의 상태와 거의 동일했다.


 언다인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괴물들은 다시 복수를 위한 목소리를 높일 테고, 그렇다면 또 다시 헛된 비극이 반복되리라. 알피스는 여느 때보다 더욱 강경해진 것처럼 보였다. 소중한 이들을 죄다 잃어버리고 밑바닥에 떨어진 뒤에야 더는 손에 담을 것도 놓칠 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던가? 학살극 이후 날뛰던 시민들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필 수는 없었다. 결국 언다인을 제 곁에만 있도록 결정을 내렸지만 본인도 무척이나 심란하겠지.

 "나를 왜 못 나가게 하는 거야? 언제 인간이 떨어질지 몰라."

 "이게 내 일이야. 미안해."

 "… 네가 그렇다면야."

 다시 형성된 언다인은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사려깊어서, 알피스의 말을 금새 받아들이고 다시금 화면을 응시할 듯. 다시는 얼굴을 마주볼 수 없을지라도, 알피스는 언다인의 많은 것이 그대로라고 느낄 것 같다. 지도자가 된 이후 한 번도 보지 않아 먼지 쌓인 비디오 플레이어에서 지상의 애니메이션 -알피스는 그것이 이제 역겨워졌을 테다- 을 틀어 주면, 언다인은 그 전투 장면에 흥분한 듯 싶을 것.


 연구소 한구석에서 다 말라가는 황금꽃 차 한 상자를 발견한 알피스는 그것이 아주 오래 전 언다인이 제게 선물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떠올릴 듯. 아스고어가 찻잔을 선물해 주었다는 말을 들었는지, 핫랜드까지 한 달음에 달려와 차 상자 몇 개를 건네 주고는 탄산음료도 좋지만 차도 괜찮지 않겠냐며 환히 웃어보이던 언다인. 그 때의 알피스는 당연하게도 티타임을 즐길 시간이 없었을 테고, 아스고어를 만날 때만 몇 번 꺼내서 서툴게 우린 차를 대접했었을 것 같다. 이윽고 왕의 방문도 줄어들게 되자, 아직 열지도 않은 찻잎 상자는 수많은 종이 더미로 쌓아올린 시간들 속에 사라져버렸다고만 생각했을 텐데.

 그럼에도 지금의 언다인에게 차를 권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알피스는 대충 먼지만 털어낸 몇 개의 종이갑들을 책상 한 구석에 올려뒀을 것 같다. 그리고 평소처럼 빈 연구소를 말없이 돌아다니던 언다인에게 그 낡은 상자들은 무척이나 큰 향수를 느끼게 했겠지. 덧그린 기억 속에서도, 따스히 일렁이는 차 한 잔의 모습은 선명히 새겨져 있을 것. 누군가와 마주앉아 마시는 황금꽃 차는 언다인에게는 평화 또는 기쁨의 정의였을 테니. 중갑주의 몸을 가지고 예전처럼 차를 우리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언다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기쁨을 되살릴려고 했을 듯.


 언다인은 보았다, 알피스가 수많은 화면들을 통해 지하의 안전을 감시하는 모습을. 그는 괴물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는 몹시 영리하고, 총명하고, 아름다워서. 언다인은 저만치에서 그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알피스의 방은 멀건 빛을 내고, 때때로 치직거리며 깜빡이는 화면들로 가득하다. 그 뒤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도 화면들의 깜빡임에 맞춰 일렁인다. 그림자의 흔들림은, 몹시 익숙한 일렁임으로 변해간다. 언다인은 그 일렁임을 알고 있다. 언젠가, 여섯 번째 인간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였나? 그는 물가에 서 있었다. 다리 위에 선 제 모습이 검푸른 물빛에 반사되었고, 그것이 물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던 모습.


 이제는 네가 영웅이구나. 마침내 화면 앞에서 희미한 미소를 띈 알피스를 바라보던 언다인은 그제서야 스스로가 잊힐 의지를 가진다. 알피스가 자신을 언다인이 아닌 언다인의 유품으로 보는 순간, 다시 만나고자 했던 제 마음이 이제는 알피스의 의지를 흔들어버릴까 싶어, 이윽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옛 영웅. 이는 모두 새 영웅을 위한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서이다. 방을 채우던 무언가가 끊긴 것 같은 기분에 알피스가 고개를 돌려 언다인 쪽을 보자, 언다인은 조용히 다가와 그를 끌어안을 듯. 알피스의 조그마한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려는 듯 머리를 숙인 찰나,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투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뒤이어 건틀릿 한 짝, 갑주장화 한 짝, 마침내 알피스가 안고 있는 것은 텅 빈 몸통 갑주뿐. 판금의 틈새로 배어나온 잿가루와 이제는 완전히 분해된 갑옷, 제 곁을 에워싼 수많은 언다인 사이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알피스. 언다인은 그를 믿었을 테다. 눈 앞에서 자신의 최후를 느껴도, 알피스는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_ 델타룬 기반, 교사와 경감과 북방 횡단열차.


아직 둘이 서로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전제 하에, 어느 날 열차의 같은 칸에 타게 된 언다인과 알피스가 보고싶다. 먼 길을 가는 열차였기에 다음 경유지까지는 하룻밤은 더 달려야 하며, 다시금 내리기 시작한 눈이 창문을 뿌옇게 가리는 오래된 열차칸 안의 둘. 철도 위의 밤은 길고, 침묵 또한 어색해 시작된 담소.


같은 동네에서 일했음에도 그닥 말을 나누지 않았던 만큼, 둘은 어색한 존댓말로 대화를 나눈다.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에서 반가움을 느끼는 것도 있고, 어렴풋이만 알던 경찰서의/학교의 그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편안해지기도 했을 듯. 우연의 일치로 도착지도 같고, 언다인이 발령 난 곳과 알피스가 일하게 될 곳도 꽤나 가까웠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미묘하게 어색한 기류 속에, 간간히 빈 손을 꼼지락거리거나 다리를 떨던 언다인이 어색한 존댓말로 말을 걸면서 시작되었을 대화. 둘 다 서로를 'sir'이라 불렀으면 함. 때때로 창문 밖에 비치는 풍경 보면서 이야기도 나누며, 꽤나 서로 동경할 만한 점이 많다고 여길 거 같다. 알피스가 열기 어려워하는 음료수 뚜껑을 언다인이 따 줬다던지, 심심풀이로 십자말풀이 하던 언다인이 인내심을 잃기 전에 도와주는 알피스.


-잘 자요, 선생님.

-안녕히 주무세요, 경관님.


하고 밤 인사를 나누고, 침대에 누운 언다인은 여전히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도 금방 잠들 것 같다. 그리고, 나름 좋은 분이라는 생각 하며 잠시 후에 누울 알피스. 철로 위의 밤은 금새 지나고, 아침 햇살에 눈을 뜨자 자신이 언다인 침대 쪽으로 돌아눕고 잤다는 사실에 혼자 놀란 알피스. 일찍 일어나 머리 감고 들어온 언다인 보며 괜히 당황했으면 좋겠다. 밤동안 오던 진눈깨비는 그쳤는지 창문에는 옅은 물기만 남아 있고, 그 너머로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둘. 어느 정도 편해졌다고 여길 무렵,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울리는 경적 소리. 짐 가방을 내리고, 침구를 정리하고, 함께 복도를 걸어 기차에서 내린 뒤 개찰구까지 가서야 작별 인사를 나눌 것 같다. 만날 일이 있다면, 언젠가 또 보자고.


그리고 또 언젠가는, 또 다시 그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될 것 같다. 그 날처럼 흔들리는 기차, 차창에 묻어난 눈발의 꽃잎, 서서히 우러나는 황금꽃 차, 그리고 겹쳐진 서로의 손과 얇은 은빛 반지.




_인어 언다인X연구원 알피스, Laboratory Mermaid


 인어 언다인과 연구원 알피스의 해양생물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 근미래 판타지가 보고 싶다. 전설 속에나 존재한다고 알려진 인어 군집의 발견 이후, 인간들이 이들을 각자의 욕심을 위해 잡아들이며 시작된 이야기. 알피스는 직접적인 인어 포획에 참여하진 않았겠지만, 연구소에서 가장 유망한 인물이던 만큼 제일 어렵게 생포한 인어들의 전사를 연구하게 되었다. 수십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생포한 그를 예찬하는 마음 반 조롱하는 마음 반으로 불사의 존재라고 이르기 위해, 연구소에서 그 척안의 인어에게 운디네를 비튼 언다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 듯. 작살과 마취총 수십 발에 선명한 붉은 지느러미가 다친 모습 보면서 연민도 느꼈겠지만, 그것 외에는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좁은 수조에 약을 타 주고 인어가 깨어날 때까지 그의 유일한 무기였던 창을 관찰할 알피스. 미지의 금속으로 이뤄진 표면에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대한 작살창은 그 주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것 같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상체와 꼬리를 겨우 구겨넣으면 꽉 차는 원형 수조 안에서 가끔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산소 방울들에 눈을 뜬 언다인. 어스름한 연구실 안, 푸른 조명이 켜진 원형 수조에서 들리기 시작한 유리 긁히는 소리에 급히 일어난 알피스가 확인하러 가 보면 이미 억센 손톱이 강화 유리 수조 안을 엉망으로 그어 놓았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선명히 빛나는 황색 눈과 흥분으로 크게 벌어진 귀의 지느러미, 거칠게 숨을 내뱉듯 붉은 속살을 내비치는 목과 허리에 난 아가미... 절절한 분노에 한참을 압도당해 있던 알피스는 인어의 움직임이 잦아든 뒤에 죽은 정어리 몇 마리를 수조에 넣어 주었지만, 언다인은 그저 알피스를 빤히 쳐다보며 먹이에는 눈길도 안 줄 듯. 그 이후에 살아있는 먹이를 넣어 줘도 언다인은 이를 건드리지 않고 자신만으로도 이미 꽉 찬 수조 안에서 열빙어니 멸치니 하는 물고기들이 헤엄칠 수 있도록 내버려둘 것 같다.

 늘상 바닥에 가라앉아 살이 불어버린 먹이를 치우며 알피스는 어쩔 수 없이 걱정하기 시작할 테고, "오늘도 안 먹었어? 그… 먹어야 안 아파." 하고 한참 동안 언다인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 당연히 몸에 주삿바늘이 닿는 것도 극히 경계하던 만큼, 언다인을 검사하거나 하다못해 영양제를 주사하기까진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이 수반될 것 같다. 이와 동시에, 알피스는 인어를 살리기 위해 저항하지 못하는 그들의 팔에 영양제를 주사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죄책감이 있을 듯. 죽지도 못할 영혼들을 가두고, 만일 살아있다 한들 이들에게는 가혹한 실험만이 주어진다는 사실과 본인이 그것을 주도했다는 업보가 발목을 잡기 시작할 무렵, 어느 날인가 알피스가 건넨 조개 하나를 말없이 까서 입에 넣는 언다인. 주사를 맞기 싫어 억지로 먹는 모습이 아니라서, 괜히 웃으며 소심하게 칭찬을 건넨 알피스는 언다인의 표정이 살짝 벙쪄 있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식사도 잘 하기 시작하고 아무 실험도 없는 날이면 웃어보이기까지 하는 언다인을 해치고 싶지 않아 온갖 명목을 붙여 가며 더 큰 수조로 옮기고, 진행하는 실험도 행동 연구와 같이 아프지 않을 것만 허용할 알피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진행하는 채혈이나 조직 채취 등의 상해 입히는 실험을 마친 뒤에는 저항하다 지친 언다인의 수조에 기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 듯. 여태까지 다른 실험체들에게도 그런 연민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몸에 닿는 바늘에 선홍빛 지느러미를 활짝 펼치며 거부하던 모습이 뇌리에 선명히 남았을 것 같다. 처음 연구하는 생명체인 만큼 수십의 인어가 실험실에서 죽어나갔지만 여전히 격정적이고 강한 언다인, 그리고 제 손으로 죽인 그의 동족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수조 속의 그를 볼 때마다 죄책감만이 등을 타고 오를 알피스. 그는 지금이라도 스스로의 본분을 져버리고 언다인을 풀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딜레마에 빠져 버린다.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언다인은 알피스를 무척이나 신뢰하며 친한 존재로 여길 것 같다. 수조에 기대 쪽잠을 자다 악몽을 꾸기 시작한 알피스에게 물을 뿌려 깨우는 등 우연인지 아닌지 모를 행동들을 하는 것이 그 시작. 자신의 손으로 또 다른 인어를 죽이는 모습을 언다인이 내리 지켜보고 있었다는 무의식 속에서 떨다, 갑작스런 물벼락에 잠을 깨고 안경을 고쳐 쓰면 수조 속의 언다인은 늘 그렇듯 제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딴청을 피우고. 뿐만 아니라, 실험 이후 영 기분이 안 좋아도 알피스가 문을 여는 소리에 곧바로 활짝 펼쳐지는 귀의 지느러미 같은 행동에서 그의 알피스에 대한 믿음이 스스럼없이 드러날 것 같다. 저녁이 다 되어갈 무렵 수조의 흐린 조명만이 어두운 연구실을 밝히고,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진 안락사용 주사기나 유독성 약품을 뒤로하고 언다인과 마주하는 알피스. 온통 푸른 물과 조명과 비늘들 사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붉은 지느러미의 피막과 머리칼, 그리고 여느 인공 광원보다 빛나는 듯 한 두 눈이 나름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연구실 한쪽에 보관해 둔 그의 창을 쥐어 주면 꼭 오랜 벗을 만난 듯 기뻐하고, 태블릿 화면 속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며 기대감의 미소를 짓기도 하며, 알피스가 때때로 전해 주는 바다의 흔적을 사랑할 언다인. 고향에 대한 향수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언다인은 때로 무척이나 처절한 저들의 군가를 부를 것 같다. 복창해 줄 동족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제 목소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이끌어내는 강직하면서도 비통한 음계. 인공 광원이 태양을 대신하고 바다의 흔적이라곤 만들어낸 해수의 농도뿐인 수조 안, 지상의 것과는 다른 매질을 통해 퍼지는 먹먹한 울림일지라도, 그 감정은 노래를 듣던 알피스에게도 강하게 전해졌을 것. 이를 계기로 알피스는, 비록 제가 언다인에게 있어 악인이 되더라도 그에게 자유를 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때로는 언다인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워, 한참을 연구실 문 앞에서 울음을 참다가 기껏 들고 온 마취제를 다시 냉장고에 넣거나 그대로 버릴 알피스.

 시간이 지나, 야생의 인어들이 인간을 피해 점차 깊은 바다로 사라져버리면서 얼마 남지 않았을 연구소의 인어들. 한정된 수의 실험체로 최대의 성과를 내려다 보니, 알피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다인을 실험대에 올리는 일이 생길 것 같다. 누구보다 강한 그였기에, 마취만 잘 한다면 다른 인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버틸 수 있는 모습을 보며 서서히 다른 연구원들의 관심사도 언다인으로 향할 듯. 다른 인어들이라면 몸이 견디지 못했을 양의 약물을 투약해도 금새 회복하는 그의 모습에, 무엇이 이어질지는 알피스가 제일 먼저 통찰했고, 가장 두려워했을 것 같다. 봉합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취가 풀려 몸부림치는 언다인의 상처를 급한 대로 제 옷소매로 꾹 눌러 지혈하며, 그의 혈액으로 푹 젖은 제 소매를 볼 때마다 두려움과 동시에 하루빨리 그를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알피스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릴 듯.
 그에게 자유를 주기로 마음먹은 당일, 알피스는 모든 게 완벽하게 짜여진 계획을 보면서도 내리 불안해하고 떨었을 듯. 만일 치사량의 마취제가 흘러들어간다면? 연구소장에게 발각되어 잠든 그를 죽은 그의 동족들과 함께 처분하게 된다면? 처음부터 제 몸에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오만 가지 고민을 하다, 불안을 이기지 못한 알피스는 모든 도구들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울었을 것 같다. 마침내 감정을 갈무리한 채 연구실에 도착한 알피스에게서는 미묘한 소금내가 느껴질 듯. 이에 놀란 언다인은 수조 밖으로 팔을 뻗어 알피스의 얼굴 주위를 매만져주고, 그 손길마다 날카로운 손톱이나 서늘한 피부 같은 것들이 무척이나 선명하게 느껴져 또 다시 감정을 내리누를 알피스. 그 또한 조금 어색히 웃으며 팔을 뻗어 언다인의 목덜미를 감싸 주고, 경추를 덮고 있는 비늘을 조심스레 손끝으로 훑을 것 같다. 금방 잠이 깬 데다 오른 시야가 비어 있는 언다인은 알피스가 손에 주사기를 쥐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순간 느껴지는 통증조차 목 뒤에서부터 얼음장처럼 스며드는 약물로 인해 금새 잊혀진다. 감각들은 척수를 따라 하나둘씩 사라지며, 순식간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 시야에 마지막으로 담은 것은 빈 주사기를 놓쳐버리고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알피스의 모습. 제게 닿는 어떠한 인간의 체온도 느끼지 못하고 고개를 떨굴 때까지, 그는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하며 화학적 수마에 빠진 인어의 목을 그러안고 있었다.

실험체 번호: XXXX (Undyne)
폐사 시각: 금일 05시 22분
사인: 약물 저항성 연구에 사용된 약제 3종과 실험 이후 투약한 수액의 부작용, 복합적 요인으로 의한 쇼크사로 추정. 자세한 사항은 전담 연구원 알피스 박사가 부검 후 첨부.
사체 처리: 부검 후 자체 방류.

 알피스가 떨리는 손으로 서명을 마치며, 불사신이라 일컬어진 인어들의 전사가 죽었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꼭 관을 닮은 생물 수송용 아이스박스에 언다인이 있던 수조의 서늘한 물을 담고, 이런저런 생명유지장치를 연결하는 동안에도 알피스는 그가 쓴 연구일지가 실현되지 않게끔 간절히 빌 듯. 그 안에 잠든 언다인을 눕히고, 곁에는 이제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 한 그의 창을 헝겊에 싸서는 꼭 부장품처럼 놓은 뒤 그가 잡혀왔던 바다로 향하는 알피스. 뒷좌석에 그를 실은 차가 덜컹일 때마다, 흔들리는 물소리가 혹여 언다인을 일찍 깨우지 않을까 하며 불안해할 것 같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침식된 바위와 암초들이 가득한, 처음 그가 잡혔던 해안. 한때의 몸부림에 아랑곳않고 인어의 몸을 옭죄어왔으나 이제는 낡고 해져 유령처럼 일렁이기만 하는 그물을 전부 걷어낼 즈음,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햇빛에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었을 하늘.
 이를 등진 채 차에서 내린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열어 보면, 이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약간씩 제 지느러미를 움찔거리는 언다인이 눈에 들어오고. 꼭 시든 꽃이 다시 피어나는 듯 적색의 피막이 서서히 벌어지는 모습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을 알피스. 혹여나 익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해 가며 그를 밀물로 밀어넣은 순간, 본디 바다의 존재였던 이는 맥동하는 혈액 같은 바닷물에 눈을 뜬다. 제 비늘결을 따라 익숙한 염분이 채워지는 감각이 순식간에 몽롱한 정신에 경종을 울리고, 머리칼 사이로 흐르는 해풍에 결코 잊지 않았던 제 혼이 깨어난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작별 인사조차 없이 파도를 따라 바다로 들어가버린 언다인은, 얼마 안 되어 가장 가까운 암초에서 알피스를 부르듯 손짓할 것 같다.
 알피스는 그제서야 제가 한 생각들이 전부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을 듯. 보라빛 장막을 걷어내고 수평선 위로 떠오른 금빛 일광에 빛나는 머리칼, 투명한 바닷물 아래로 비치는 날렵한 선의 꼬리와 수류에 일렁이는 붉은 지느러미. 약간 비틀거렸지만 가까스로 낮은 암초 위에 올라선 자신을 보며, 무엇도 묻지 않겠다는 양 그저 환히 웃어 주는 언다인. "여, 여기가 맞는 거지? 네가 좋아하던…... ." 비록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지만, 알피스는 늘 그랬듯 먼저 말을 꺼냈고, 이어진 것은 선명한 긍정의 끄덕임. 흘러내린 제 머리칼을 가벼이 넘기고, 유려한 호를 그리며 물살을 가르는 언다인의 선홍빛 지느러미는 여느 때보다 아름답게 보였을 듯. 그가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말없는 햇빛이 잔잔한 파도 위에서 부서질 때까지, 알피스는 희게 소금이 낀 암초 위에서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았으리라.


 그 이후 인어들에 대한 여러 담론이 오간 뒤 인어 연구는 금지되었지만, 연구소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인어들의 전사에 대한 목격담은 계속 들려올 것 같다. 물고기 뼈와 조개들로 만든 갑옷을 입고 다른 인어들을 통솔하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수중 카메라를 단번에 꿰뚫어버리고, 때로는 해변에 올라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그 인어. 수면에 일렁이는 물비늘과 하나된 것만 같은 푸른빛 몸, 그와 대비되는 홍색의 지느러미와 머리칼, 그리고 바다 깊은 곳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단 하나의 금안. 연구원들은 죽은 그의 몸이 바다로 흘러들어가자 마법처럼 재생한 것이 아니냐며 시덥잖은 농담을 했을 듯. 그는 어쩌면 바다 그 자체라,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만들어진 전설은 어느새 진실인 양 세간에 자리잡고, 그리하여 불사의 언다인은 마음껏 대양을 누비게 된 것이라 일러졌으리라. 그의 온전한 삶을 아는 연구원은 단 한 명 뿐이었을 테니.



_ 해리포터 AU


 알파인 해리보터 AU는 뭔가 호그와트 재학생의 풋풋함도 좋지만 졸업하고 나서 성인 마법사로 지내는 것도 보고싶다.

 둘 다 마법부에서 일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마법 사고 및 재난부의 알피스랑 마법부 소속 오러 언다인. 언다인이 한 살 정도 연하였으면 좋겠고, 그 전부터 썸 타다가 제 졸업식날 찾아온 알피스에게 언다인이 고백하는 걸로 연애 시작했을 듯. 뭔가 마법부 리맨물 비슷한 느낌 날 거 같기도 하고? 알피스 책상 위에 언다인에게서 온 종이비행기들은 다 못 읽어보고 접혀 있는 거 귀여울 거 같다. 전에 한번 아무 생각없이 열어 봤다가 데이트 신청이라서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갔다던가 해서... 언다인 같이 멋진 신입 오러와 연애중인 사람이 자신이란 걸 알피스는 조금 숨기고 싶어할 듯. 언다인은 신입 오러 중에서도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알피스는 마법사 세계를 가장 앞에서 지키는 이의 연인이 머글 물건들이나 만지작대는 자신임을 들키고 싶진 않았을 것. 그렇지만 언다인은 시간 날 때마다 알피스네 부서에 찾아오곤 할 거 같다. 그렇게 와서 전해 주는 내용은 별 거 없겠지만... 오늘 시간 비면 호그스미드 가서 파이어위스키라도 한 잔 하지 않을래? 정도의 제안이나 임무 중에 주운 물건 중 알피스가 좋아할 만한 머글 물건을 챙겨주러 오는 언다인. 알피스가 머글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 정말 신기하고 멋지다 여길 거 같다.


 알피스는 머글 태생, 언다인은 마법사 집안 출신이었으면 함. 그래서 알피스는 자연히 머글 문화에 익숙할 거 같고... 언다인도 머글 사이에서 임무 수행해야 할 때도 있으니 나름 마법사인 거 숨기려고는 하지만 알피스만큼 적응하지는 못했을 거 같다. 알피스가 좋아하는 애니 극장판 함께 보러 가자고 하면 알피스는 영화관 입장하기 전에 언다인과 마법 쓰지 말라는 약속 하고 들어갈 듯. "아무리 화가 나도 무언 마법을 쓰지 않습니다" 를 조용히 다섯 번 복창하고, 신이 나서는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언다인. 알피스와 함께하는 데이트는 이런 식으로 머글 세상에서 이뤄지는 게 많을 듯. 움직이지도 않고, 등장인물이 말을 걸지 않지만 그래도 스티커 사진을 찍어 보자고 사진 부스로 알피스를 데려간다던지 하는 언다인.


 알피스의 지팡이는 호그와트 5~6학년 때까지는 흑호두나무와 유니콘의 털, 잘 휘지 않는 짧은 지팡이. 호그와트에 입학했을 때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알피스에게 잘 어울리는 좋은 지팡이었다. 그러나 언다인에게 마음을 품은 뒤로 점점 약해졌을 것. 알피스가 언다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숨기고 진실되지 못하던 순간마다, 마법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을 것 같다. 결국 NEWT를 치기 전에 지팡이를 바꾸러 올리밴더의 가게에 간 알피스는, 마침 제 지팡이를 점검하러 온 언다인과 마주쳐버리고. "흑호두나무 지팡이는 주인이 스스로에게 진실되지 못하면 그 힘을 잃어버리지. 이 녀석은 다른 마법사의 손에 들어가야 살아날 수 있을 것 같구나." 새로운 지팡이를 받아 언다인과 함께 가게를 나올 때까지, 알피스의 귓전엔 올리밴더의 그 말이 계속 맴돌 것. 언다인은 알피스가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옆에 있었을 것 같다. 알피스가 여러 종류의 지팡이를 휘둘러 보고, 그나마 가장 잘 반응하던 흑단목과 유니콘의 털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챙겨 나오기까지의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리. 말없이 제 새로운 지팡이만 만지작대는 알피스를 계속 바라보며, 언다인도 답지 않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옅게 걸려 있었겠지.


 그리고, 그 때 알피스의 손에 쥐어졌던 고풍스런 흑단목 지팡이는 이제 언다인의 흰 상아빛 사시나무 지팡이와 함께 둘의 집에 놓여 있겠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언다인의 연인이 된 동시에 자신에 진실해질 수 있게 된 알피스는 제 지팡이가 낼 수 있는 모든 위력과 섬세를 알게 되었을 것. 언다인의 지팡이 또한 사시나무와 용의 심줄이라는 강력한 재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힘을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 같다. 중간 정도 길이에 적당히 휘어지는, 잘 벼려진 비수처럼 새하얀 사시나무 지팡이는 언다인이 호그와트 입학 전 지팡이 가게에서 만난 여느 지팡이보다도 언다인과 잘 맞았을 듯. 쥐는 순간의 온기와 시험 삼아 휘둘러 볼 때 세차게 튀던 붉은 불꽃의 풍경은 어엿한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언다인의 뇌리에 새겨져 있는 풍경. 처음 마법을 연습할 때는 다른 학생들의 것보다 더 강력한 효과에 무척 들떴겠지만, 점차 제 지팡이를 제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언다인. 부양 마법을 연습하던 도중 친구의 얼굴을 깃털로 후려친다던지 하는 자잘한 사고부터, 가끔씩은 누군가의 물건을 부수거나 모의 대결에서 상처를 입혀버리는 일을 겪고 나서부터는 마법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가졌을 것 같다. 그리고 정식 오러가 된 지금, 새하얀 지팡이는 언다인의 든든한 벗이 되어 있겠지. 마법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들과 결투를 벌이거나 그 흔적을 쫓을 때마다, 언다인은 지켜야 할 이들을 생각하며 제 지팡이를 그러쥐곤 하겠지.


_ 15세기 르네상스 배경 AU


운명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난 버림받은 신세를 한탄하며 홀로 울고,

대답 없는 하늘을 향해 헛되이 외쳐 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 운명을 저주한다.

...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예술과 학문의 도시 그곳에서 만난 자경단장 언다인과 발명가 알피스의 이야기.


 피렌체가 아직 온전히 꽃피지 못했던 시절, 많은 무공을 세워 나라를 지키는 창이라고도 불리던 언다인. 그만큼 왕실에 만연한 정치싸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 사방에서 그를 이용하려고 손을 뻗고, 전쟁과 역병 이후에는 궁정의 누구도 시민들의 안전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환멸 느끼고 왕실 기사단을 떠났을 것 같다. 그럼에도 시민들을 지키겠다는 신념은 꺾이지 않아, 역병이 할퀴고 지나간 피렌체에 방랑 기사나 병사들로 이뤄진 자경대에 합류한 언다인은 그 중 가장 뛰어난 실력과 통솔력으로 금새 자경단장의 자리에 올랐을 것. 언다인은 때때로 피렌체에 거주하는 발명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는 것을 보았을 테고, 오늘도 2층집의 그 발명가는 오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지나가며 듣곤 할 것 같다.


 피렌체 변두리, 붉은 지붕을 얹은 2층짜리 석조 주택의 주인은 이름만큼은 널리 알려진 발명가 알피스.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좋아 일찍이 천재성을 알아본 여러 귀족 가문들이 그를 후원하고 있지만, 박람회에는 늘 등장하지 않고 집 근처에서 연구만 하고 있을 듯. 알피스는 여전히 소소한 취미 삼아 쓰레기장을 뒤지며 쓸만한 물건들을 챙겨오곤 했을 것. 과거에는 쓰레기를 줍고 그걸 팔아 먹고사는 아이들의 일원이었으나, 늘상 외따로 떨어져 있던 알피스에게 드리무어 가가 후원을 해 주고, 다른 귀족들도 그 재능을 알아봄에 따라 지금의 "변두리 2층 벽돌 집의 그 발명가" 알피스가 있게 됨. 알피스는 여전히 자신이 그런 빈민에 마녀 취급까지 받던 사람이라는 걸 숨기고 싶어할 테고, 드리무어 가에서도 알피스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라도 그가 편히 은둔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지원해 주었겠지. 그런 알피스에게,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언다인이라는 존재는 일종의 이변에 가까웠을 것 같다.


 그 날도 쓸 만한 물건들을 주우러 다 무너진 나무 구조물과 찢어진 가죽과 황동 파이프들이 쌓인 외곽으로 나온 알피스와, 도시 외곽의 위험 지역 중 하나인 쓰레기장으로 나와 순찰을 돌던 언다인이 만나게 되었을 듯. 어스름 속에서 두 개의 등불이 흔들리는 가운데, 약간의 의심과 동시에 놀람이 담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것도 잠시, 순식간에 제 앞에 들이밀어진 진압봉에 안고 있던 고물들을 떨궈 버린 알피스. 순간 겁에 질린 그의 표정이 어째서인지 무고해 보여, 알피스의 신원을 확인한 알피스는 금새 긴장을 풀고 떨어트린 물건들을 주워 줄 듯. 발명품을 위한 재료를 얻으러 왔다는 말에 눈이 잠시 반짝이나 싶더니, 밤길이 위험하다며 알피스를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 한 언다인. 그러는 동안에도 알피스가 들고 있던 설게도에 관심을 보이고, 기꺼이 부피가 큰 양피지 조각이나 목재들을 들어 주며 집까지 안내해 줄 것 같다. 이 목재는 이 부분에 쓰이고, 이 양가죽은 여기를 덧대는 데에 쓰고...... 어스름 내린 쓰레기장에서 랜턴 불빛 하나에 비춰진 알피스의 서툰, 그러나 알 수 없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가설과 이러서런 해설들에 언다인은 푹 빠져든 것처럼 보일 것.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언다인은 "아닙니다, 나의 이웃과 벗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라며 알피스에게 잘 자라고 인사해줄 거 같다. 어투는 무척이나 직설적이나, 그의 입에 배어 있는 몇몇 어휘에서 궁정기사의 기품이 뚜렷하게 느껴질 듯.


 본인이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쓰레기를 뒤지는 그 모습이 첫만남이었겠지만, 그 일 뒤로도 언다인은 밤 순찰의 마지막 경로인 그 쓰레기장에서 알피스와 때때로 이야기를 나눌 듯. 그러면서, 내심 알피스가 무척이나 좋은 사람이라 여겼을 것 같다. 늘상 알피스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며, 항상 자신의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 정중하게, 또 때로는 그저 아름다운 밤이라는 통상적인 작별 인사를 남기고 돌아가는 언다인. 그 날도 여김없이 알피스와 함께 그의 발명품에 들어갈 물건들을 찾고 있다가, 돌아가자고 말을 꺼낸 직후에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소나기. 다 해지고 빛 바랜 모포를 함께 뒤집어쓰고 무작정 달려 들어온 알피스의 집. 그 안의 풍경에, 언다인은 다시금 감탄을 못 참았겠지 싶다. 그 안의 모든 만들다 만 기계들이니 설계도니 하는 것들이 그저 경이롭기만 해서, 당신은 참 대단한 이라고 말해주었을 것 같다. 급히 마실 거라도 들고 오던 알피스는 언다인의 그 말에 어쩐지 복잡한 표정이어서, 언다인은 잠시 멈칫하다가도 알피스의 무척이나 빈약한 식사에 황당해할 듯. 그렇게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이윽고 잠잠해진 빗줄기 속으로 급히 뛰어가는 언다인.


 그러니까, 단순한 염정 소설에나 나올 법한 사랑에 빠진 게지. 이제는 은퇴한 드리무어 가의 장군 거슨에게 그 말을 들은 언다인은 한동안 당혹스런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만 있을 것 같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일 이후로 경비구역이 재정비되어 언다인은 이제 알피스의 연구소 주변 지역을 매일같이 순찰하게 되고. 유독 자주 마주치는 것 같은 언다인에게, 알피스는 지금까지 있던 일의 보답이라며 정교한 브로치를 하나 선물해 주었을 듯. 자경단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 거슨이 쥐어 준 겉부분이 마모된 브로치를 떼어 제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어느 날부터 정교한 파도와 물고기 문양이 새겨진 새 브로치로 망토를 고정하는 언다인. 그 출처를 궁금해하는 자경단 동료들의 말에, 그는 그저 선물받았다고만 하며 미소지어 보일 것 같다. 피렌체 변두리 작은 운하가 흐르는 곳 붉은 지붕의 2층 석조주택, 밤 늦게까지 촛불 그림자 일렁이는 발코니에서는 나이트가운 입은 알피스, 그 아래에는 손에 랜턴을 들고 순찰을 마무리하던 언다인.


 이제는 알피스에게도 언다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일종의 일과에 가깝게 자리잡았을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불안과 경계를 품고 잘 접근하지 못하던 알피스였던 만큼, 이렇게 친구라고 여길 만한 이가 -부끄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언다인뿐이었을 것. 한편, 언다인은 빈 시간마다 책상 앞에서 펜을 들고 씨름하기 시작함. 이거라면 적당한 말일까 하며 고민을 하다, 결국 양피지가 하얗게 일어날 때까지 박박 지우는 일의 방법. 괜찮은 말들을 찾기 위해 이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던 대사가 많은 연극들을 보러 가기도 하는 그의 책상에는 늘상 쓰다 만 편지들만이 쌓여간다. 알피스 또한 설게도를 그리는 도중 종이 가장자리에 최근 보았던 거리극의 멋있다 생각했던 대사를 써넣어 보기도 할 것 같다. 그 날의 할 일을 마친 둘이 앉는 곳은 잉크 방울과 부서진 깃펜 대와 어질러진 종이들이 가득한 책상, 그리고 그날 잠들기 전 구겨지거나 다시 씻겨 흔적만 남을 짝사랑을 하는 둘.


 드리무어 가의 후원을 받고 있는 발명가라 한들, 알피스에게 있어 그가 그 발명가라는 것을 모르거나 과학에 관심이 없는 뭇 사람들만이 때때로 그를 마녀라 칭하며 수군거곤 할 듯. 알피스가 도피를 선택한 것도 그리한 부담이 늘 마음 속에 남아 있어서일 테고, 언젠가 제가 보호받지 못하는 날이 오는 것을 두려워할 듯. 그렇기에 언다인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와 함께 대화하고 웃는 날을 잊지도, 놓지도 못해 며칠 내내 칩거하는 날들도 있었을 것 같다. 며칠 동안 창 밖에서는 희미한 램프 불빛만이 일렁이고, 언다인은 안에서 잠겨 있을 문을 두드려 보려다가도 결국 다시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을 것. 겨우 불안을 걷어내고 문간에 나오면, 때때로 그곳에는 만든 지 얼마 안 된 엉성한 꽃다발이 놓여 있다. 아마도 강변에서 꺾어 왔을 붓꽃 여러 송이가 주가 되었으나, 때때로는 붉은 카네이션, 월계수 몇 가지. 그에게 꽃들을 건네 주던 사람은, 어째서였을까. 장미는 그 안에 한 송이도 넣지 않았다.


 때때로 언다인은 제 이웃들이 준 와인을 들고 알피스에게 찾아온다. 포도농장에 숨어든 도둑을 잡은 일에 대한 감사나, 예배당 신축에 필요한 석재를 옮겨 준 일에 대한 사례로 손에 들어온 각기 다른 포도주들. 어쩌다 이걸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적당히 취기가 오르기 전에 언다인이 잔을 내려놓는 일로 마무리되는 둘의 저녁 식사. 그러나, 그날만큼은 유독 식사도 길어지고 언다인이 와인을 그만 마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특별히 맛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빵을 몇 조각씩 먹으며 정말 맛있다는 말만 반복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방 안을 약간 비틀대며 걸어다녔고, 갑자기 질끈 묶은 머리를 풀어헤치더니…… . 그래, 발명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고백을 하였지. 그것은 맹세를 하는 기사의 품격과 재판장에서 고개를 숙인 피고인의 진정성을 고루 갖춘, 취중의 진술. 한참을 비틀거리며 걸어다니던 언다인이 갑작스레 풀썩 주저앉는 것처럼 보이자, 알피스는 급히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주려고 했을 듯. 그러나 언다인은 꼭 세례를 받는 이처럼 알피스가 내민 손을 조심히 잡더니, 맨정신으로는 도통 할 수 없었던 고백을 입 밖으로 내기 시작하고.


 그 뒤로, 붉은 지붕들이 즐비한 도시가 전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서 별을 보는 게 둘의 일과처럼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이른 저녁부터 언덕에 올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기고, 손끝에 앉은 무당벌레를 날려보내며 실없는 점을 쳐 보는 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무 생각 없이 올려다본 하늘은 누군가의 상기된 볼 같은 붉은색이다가, 이윽고 그 날의 적포도주와 닮은 흑자색으로 물들어간다. 붉은 기운은 점차 푸르게 변하더니 어느 순간 잉크빛이 되고, 마침내 별들의 무도회장이 된 피렌체의 상공을 말없이 올려다보는 둘. 도시 위 가로지르는 은하수 올려다보면서 날이 새도록 이야기 나누다 돌아가는 하루의 마무리.


하지만 이런 생각에 젖어 내 자신을 경멸하다가도,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새벽녁 어두운 대지로부터 날아올라

천국의 문전에서 노래하는 종달새와 같아라.


_ 소네트 29, 윌리엄 세익스피어




_ 마피아 언다인X교사 알피스, 커피와 담배


 거대한 도시를 주름잡는 마피아 조직의 보스 언다인이 본부 주변 학교 교사로 발령 온 알피스에게 빠져서 세상 평범하고 운동 좋아하는 마을 주민처럼 행동하는게 보고싶다. 신문에 난 언다인 따까리들의 행패 기사 보여주며 요즘 무서운 소식이 많다며 걱정하는 알피스 앞에서, 최대한 무해하게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저놈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건지 싶어 아주 이를 갈 언다인.


 아무리 무작위로 돌린다 해도, 하필이면 그 동네라니. 마피아 조직이 도시 전체를 꽉 쥐고 있어, 소위 무법지대로 불리는 곳의 한 고등학교가 알피스의 발령지로 정해졌다는 소식에 교무실은 완전히 뒤집어질 것. 새로운 선생들이 학생들 행패에 못 이겨 줄줄이 떠난다는 악명 높은 학교, 같은 지역에 있는 것이 수치스러울 정도라며 알피스가 재직 중인 상위권 고교 선생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는데. 게다가 많고 많은 교사들 중에 가장 심약한 -동료 교사들의 판단에 근거하여- 알피스를 그 복마전으로 몰아넣는 건지, 교무실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듯. 알피스가 짐을 다 싸고 나가는 날까지도, 그와 친했던 몇몇 교사들의 안쓰러운 눈빛이 뒤에 밟혔을 거 같다. 처음 교무실에 들어가는 동안도, 새로 온 과학 선생님이라 자신을 소개할 때도, 애써 첫 수업을 진행할 때도 항상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뿐일 알피스. 들어간 모든 수업마다 듣는 시늉이라도 하던 학생이 세 손가락에도 못 꼽을 것 같아서, 제 자질마저 의심할 것 같다.


 결국 모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 알피스는 잔뜩 우울해진 채 집으로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다. 이 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한없는 무력감까지 느껴 가며, 저도 모르게 발길 닿는 데로 제 몸을 인도해버리고. 당연하게도 정신을 차려 보면 어스름 내린 공원 벤치에 앉은 채 알피스는 또 다시 자괴감에 빠져버릴 듯. 의외로 둘의 만남은 그리 무게감 있지 않을 거 같다. 별 일 아닌 거래 마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골목길에서 페도라 눌러쓰고 나오는 언다인에게, 누구라도 붙들고 집에 가는 방법을 알아내야 했던 알피스가 길을 물어보게 될 듯.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 처음 만난 날에 애써 알피스를 바래다주며 경고의 의미로 했던 이곳의 밤은 위험하다는 말은 어느새 경고가 아니라 염려가 되어 있고, 언젠가부터 알피스 출근길에 본인도 자전거 타고 나오면서 인사하곤 할 언다인. 자주 만나다 보니 알피스가 퇴근할 시간쯤이면 직접 나와서는 알피스네 근처의 도로들이 막히지 않게 길 싹 닦아 둘 거 같고, 불량 갱단에도 적당히 주의 줘서 어느 순간부터 가장 껄렁하던 학생들까지 알피스 수업에는 얌전히 앉아 있게 될 듯.


 그럼에도, 언다인은 알피스가 제 정체를 알면 떠나리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할 듯. 조직 서열싸움 중에 뽑혀서 안대를 찬 한쪽 눈도, 알피스가 괜찮은지 물어보면 어릴적에 계단에서 넘어져서 그런 거라고 어찌저찌 끼워맞추는 언다인.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음을 알면서도 알피스 만난 뒤로는 괜스레, 그러면서도 나름 철저히 평범을 흉내낼 거 같다. 알피스랑 같이 공원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다가 부하들이 뭐 보고하러 오면 알피스 안 보는 사이에 인상 팍 쓰고 꺼지라고 손짓하고, 조직 건으로 스트레스 받아 맨손으로 데킬라 병목 부러트려 따 마시는 도중 알피스가 보낸 문자 하나에 무슨 답변을 할지 한참 동안 고민하는 언다인. 알피스는 언다인이 때때로 몹시 낡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다닌다는 걸 신기해할 거 같다. 언다인 씨, 악기도 잘 연주하는 걸까- 같은 생각을 하지만, 어째서인지 물어보는 게 쉽지는 않을듯. 결국 고민고민하다 혹시 악기 배우는 게 있냐고 물어 보는 알피스의 눈빛에, 언다인은 어색히 제 손에 들린 바이올린 케이스를 쳐다보다 급히 고개를 끄덕일 듯.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조금 연주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언다인은 결코 그 케이스를 열어 멋들어진 연주를 들려 줄 수는 없겠지. 뚜껑을 열면 그 안에는 묵직한 톰슨 기관단총 한 정과 총알 몇 박스가 있을 테니.


 그러나 완전히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듯이, 신흥 조직 토벌하느라 일어난 총격전에서 답지 않게 후퇴하는 언다인을 목격하게 된 알피스. 늘상 태평히 웃어보이던 언다인이 그렇게 인상 찌푸린 것도, 얼굴에 튄 피를 거칠게 닦는 것도 처음 봤지만 알피스는 잠시간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서 있다가 살벌한 분위기에 겁먹는 바람에 애써 언다인 씨가 아니리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피할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언다인은 몹시 굳은 표정으로 제 방으로 들어가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워넣겠지. 기관단총의 연사에서 느껴지는 타자기의 소리가 아닌, 진짜 타자기로 보낼 리 없는 연문을 몇 줄 써내려가는 언다인. 무척이나 상냥한 어투로 쓰인 문장 두어 개가 적힌 종이를 타자기에서 거칠게 빼내고, 이를 어쩔까 하며 고민하다 결국 담배 한 대 피우는 김에 편지까지 죄 태워버리는 일이 익숙해져버렸을 테지.



제목인 포말하우트는 남쪽물고기자리의 알파성입니다. 물고기의 입이라는 의미이며, 고대 페르시아 성좌에서는 "고독한 자" 를 상징하는 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