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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글

隻眼

 

 

_ 척안(隻眼) / W. 송강


  회상 속에 남은 마지막 기억은 무언가의 분출이었다. 매상 좁다란 바늘구멍을 뚫고 나오려 하던 것이 안으로 푹 꺼짐에 따라, 그 불균등을 견디지 못한 내부의 체액이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감각. 혈액과 으깨진 유리체의 대부분은 구멍의 테두리를 통해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 중 유독 끈적하고 뜨거운 것만이 필사적으로 왼 얼굴을 붙든 손아귀 사이사이에 들러붙어 있는 듯 했다. 그는 혀가 찢어지다 못해 잇새가 갈라질 때까지 이를 악물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폐부에서 기체가 아닌 혈액이 배어나오는 감각이 들 만큼 비명을 질렀다. 제 눈에서 배어 나온 것이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이유 없는 확신은 그가 병상에서 희미한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눈 위의 어딘가가 여전히 아리다. 그 끈질긴 괴로움은 시시각각 자리를 바꾸고 번지고 때로는 목 언저리에서 또 언제부터는 반대쪽 눈 뒤에서 제 존재를 피력하고 있었다. 언다인은 흰 침구 위로 산호와 닮은 끈적한 덩어리들을 뱉어냈다. 무척이나 불수의적인 움직임이던 그 역류는 멀리서 보았다면 마치 혈석을 토하는 것 같아 보인다. 허나, 그는 흰 천 위로 배어나온 핏덩이 몇 개와 섬유 조직을 타고 가지를 치는 그 적색 필적들이 오염된 쇳조각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비단 그의 목 안쪽에서부터 못으로 긁는 것과 같은 괴로움과 더불어 진한 혈향이 올라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 신체 모두가 부식된 것처럼 여겨졌다. 제 몸을 나눈 수십의 조각 중에서 겨우 한 짝의 눈을 잃었다고 온 몸이 비명을 지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 희미하게 느껴지던 광채가, 어쩌면 그의 영혼이었을 수도 있다. 엉망으로 뒤얽혀 흘러내리던 눈 안의 액체들 사이에 제 영혼이 있었고, 그랬기에 나약해진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합리화였으나, 아픔이 덧칠된 억측은 금새 잊혀졌다. 대신, 그는 이불 위에 떨어진 것들이라도 치우고자 했다. 분명 손을 뻗었음에도, 반복된 것은 수십 번의 헛손질뿐이었다. 허공을 쥐는 손길에 부아가 치민 언다인은 막무가내로 저를 덮은 것을 그러쥐었다. 뻣뻣한 합성섬유의 마찰과 함께 진득한 것이 다시금 손에 묻었다. 끔찍한 기분이었으나, 이미 감정마저 전부 흘러나가 버린 병상 위의 자신은 메마른 통증에 또 다시 신음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붕대 위를 긁었다. 거친 조직에 손끝이 닳거나 붕대 너머의 피부가 날 선 손톱에 찢어지는 것 따위는 상관이 없었다. 손의 피막과 비늘에 묻은 혈전이 얼굴에 다시 묻어나고, 생채기에서 쓰리게 방울지는 혈액이 이내 제 얼굴 위에서 굳어가며 열을 빼앗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쪽 눈을 얼마나 뜨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고, 언다인은 한쪽 눈이 충혈된 채로도 계속해서 빛을 갈망했다. 한 눈의 감각 또한 서서히 흐려진다면 제 소명은커녕 스스로를 지키는 것부터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덧댄 거즈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다시금 차오른다. 그것이 혈액이었는지 그의 혼이었는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가 정신을 잃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영혼이 제 몸에서 흘러나갔는지, 거칠게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막는 것이 불가능했다. 벌어진 겉아가미를 타고 들어온 소독약 냄새 섞인 병실의 압력이 폐부의 온 공기를 빨아내는 듯 했다. 건조한 공기에 스스로 낸 상처들이 더 벌어지는 양, 붉게 껍질이 벗겨진 손끝에서부터 온 몸의 신경에 잠에서 깨어난다. 파내어진 왼 눈에서부터 심장까지 철두철미하게 언다인을 관통한 그것은 어떠한 외과적 시술로도 빼낼 수 없었다. 아픔은 그런 것이다. 상실은, 괴로움은, 허무함은 전부 격통을 수반한다. 그는 차라리 제 모든 영혼이 더럽게 뭉개진 제 한쪽 눈깔 속에 담겨 있었으면 했다. 이를 절제하고, 소독하고, 빈 안와에 지혈을 위해 솜을 집어넣은 대신, 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념이었다. 긴장이 풀린 육신이 맥없이 뒤로 넘어갔고, 그는 남은 한쪽 눈마저 내리감았다. 또 다시, 피도 영혼도 아닌 것이 흘러내린다. 메마른 비늘 사이에 고일 새도 없이 재처럼 산화되는 한때의 감정은, 그렇게 오른 눈 아래의 온기마저도 앗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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