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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글

_ Eroica  : 英雄交響曲


_ Eroica  : 英雄交響曲 / W. 송강


  이는 시민의 뜻이다.

  왕좌를 떠나던 그의 여로를 따라 속절없이 꺾인 황금꽃들은 어느새 다시 고개를 들고 자라났다. 이와 동시에, 언제부터인가 선왕의 것과 닮은 크기의 발자국이 남았던 곳부터 조금씩 잡초가 번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화단을 관리하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왕좌에 오르는 위대한 반군의 수장은 자신이 밟는 것 중 무엇이 황금꽃인지, 무엇이 잡초인지도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무쇠 갑주장화로 감싸인 발걸음은 그 아래에 스러지는 것이 무엇이 되건, 그저 앞으로 향할 뿐이다. 그가 과거를 잊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 분명하다. 지상으로 나갈 방법도, 만일 나갈지언정 인류를 이길 방법도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있는 의문이기 때문이었다. 언다인은 신경질적으로 왕좌 옆에 그의 창을 꽂았다. 식생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생명력을 잃은 것만 같은 공간이 크게 한 번 울렸다. 서로 간섭하는 음파와 매질 사이로, 등을 돌리고 폐허로 돌아가던 그 자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 했다.


  이는 선왕의 뜻이다.

  그를 이긴 날의 풍경이 뒤이어 일렁인다. 그는 아비고, 스승이고, 주군이며...... . 처음으로 그를 쓰러트린 곳도 이곳이었다. 뒤로 푹 넘어간 그의 머리칼과 살짝 뭉개진 황금꽃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처음으로 제게 염원을 이루는 것이 무조건적인 기쁨을 보장하지 않음을 알려 준 그는, 결국 그의 염원을 이루지 못했다. 만일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더라면, 그는 기뻐하였을까? 언다인은 그것이 제게 묻는 질문인 것만 같아 차마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답을 내리는 대신, 언다인은 새로운 창에 푸른 기운을 깃들였다. 그리고, 과거 붉은 삼지창을 휘두르던 그처럼 팔을 옆으로 크게 뻗었다. 판금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이내 손에 힘을 풀었고, 선명한 청백색의 빛이 사라진 곳엔 그 보색의 착시만이 남았다. 희미한 황색광이 눈 앞에서 번뜩이는 듯 싶었다.


  이는 오랜 벗의 뜻이다.

  그는 더 이상 핫랜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곳은 이제 돌아가지 않는다. 별은 죽어 먼지와 쇳덩이가 섞인 무언가가 되었고 -이는 그의 벗이 한때 알려 준 지상의 별의 조성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을 만든 이의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나라는 더 이상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옛 왕실 과학자를 생각하던 그의 눈빛은 때로는 타오르는 분노로, 때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심으로 물들곤 했다. 뭇 괴물들은 그것이 현재의 코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때 남은 동력으로 타올랐으나, 이제는 그 긴 삶을 천천히 내려놓기 시작한 지하의 적색거성. 언다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는 나의 뜻이다.

  인간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그 폐서인이 떨어진 인간을 보듬을지언정, 그들의 영혼은 뜯겨나가리라. 어버이의 품에서 무자비하게 새끼를 떼어 놓는 인간들처럼, 그 또한 지하로 떨어진 인간에게 어떠한 자비조차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 빌어먹을 자비. 언다인은 잠시 이마를 짚었다. 이토록 제 철제 장갑이 차갑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차라리 날 죽이지 그랬나, 무고한 시민들의 숨통을 끊은 것처럼 나의 영혼을 산산조각내지 그랬나! 그는 전례없는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다. 핫랜드의 입구에서 온 몸이 녹아가며 느꼈어야 할 그 두려움이, 여섯 영혼마저 모두 사라진 시점에야 육신의 심부에서 맥동한다. 그는 뻐근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이 시야를 물들였고, 이내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텅 빈 웃음소리가 그가 앉아 있는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므로, 그 공간 또한 여전히 비어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리 그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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