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다알피(알파인)/메타언다/메타알피/기타 단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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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수선(水仙)의 수선(修繕)
어떠한 일이 있었다. 이러저러하여 그의 왼쪽 팔이 꽤나 보기 흉하게 문드러져버린 것이다. 메타톤은 굳이 그 과정들을 머릿속으로 되짚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제 팔을 고쳐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불완전한 몸으로 잠에 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의 창조주는 자리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나? 한참 동안 너덜거리는 팔을 달고 연구소를 배회하던 그는 이윽고 알피스의 공구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저런 쇳덩이를 멀쩡한 손으로 건드려 보던 그는, 이윽고 스스로를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런 짓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남은 손으로 갈아끼우고, 몇 개의 나사를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얄팍한 그의 살갖-또는 백동색의 양철박-을 지져 붙이는 일은 큰 수고가 아니었다. 그는 제 신체 한 짝을 고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에 놓곤 했다. 그만큼, 자신은 아름다웠다. 이번에는 조금의 수고가 더 필요하겠지만, 결과물은 분명 괜찮을 테다. 공기에 노출되어 검게 산화하기 시작한 몇 개의 부품들을 보며, 그는 어서 그것을 봉합해야 한다는 압박, 또는 이유 모를 확신을 가졌다.
녹아내렸다 다시 붙은 쇳물이 만든 자국은 꼭 맨정신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누군가의 신체 같았다. 분명 그가 한 일련의 행위는 복구를 위함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로 그가 더 추하게 전락했다는 사고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끔찍한 수포들이 돋아난 화상흔을 닮았다. 살아 있는 인간의 팔에 용접봉을 가져다 댄다면 필히 제 것과 같은 역겨운 흉이 질 테다. 금방이라도 허옇게 껍질이 벗겨져도 무방한 모습. 그는 제 왼 어깨의 접합부를 움켜쥐었다. 그의 힘이 허락하는 한 가장 강하게 그러쥔 것이었으나, 여느 팔도 아프지 않았다. 그는 억측했다. 처음으로 제 팔이 문드러졌을 때 그쪽의 통각 수용체가 죄 죽어버렸을 것이라고. 제 속에서 끓어오르는 유압에 떠밀리듯,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팔을 곧장 비틀어 뽑아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회색의 관(管)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숨을 들이쉬었다. 이는 그가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다. 만일 고통이 느껴졌다 하여도, 그를 순식간에 휘어잡은 공포는 그것보다 더 거대했으므로. 더 이상 제 신체에 붙어 있지 않은 그의 왼팔은 꼭 자아를 가지고 있던 성 싶었다. 순간적인 변수에 적응하지 못해 약간의 기계음을 내며 꿈틀거리는 그것은 가장 순수한 추악으로 느껴졌다. 동력원 없이 이내 축 늘어질 제 신체가, 금방이라도 몸을 곧추세우고 그 손아귀를 벌려 제 목을 향해 덤벼들 것만 같다. 메타톤은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는 그것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느낀 제 자신에 대한 공포였다. 싸늘히 식은 왼팔을 바라보며, 구역질이 치밀었다. 또 다시, 제 무결성에 대해 의심하며, 그는 남은 손으로나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당연히, 무엇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_ 해역의 정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언다인이 처음으로 떠올린 감상은, 제 온 생애 동안 관념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실재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아주 어린 괴물이던 시절, 워터폴에 놓인 가장 긴 다리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견습 기사가 되었을 때 그는 그 다리의 끝에서 끝까지 뛰어갈 수 있었다. 그가 창을 쥐고, 갑옷을 입고, 이 땅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을 때마다, 그가 알고 있는 무한한 것들은 점점 줄어갔다. 지하의 세계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즐거웠다. 그는 그 세계를 사랑했지만, 그가 미지의 것이라 알고 있는 것이 감해질수록 때로 이유 없는 무료함이 닥치곤 했다. 그랬기에, 그는 지금의 한없이 작아진 기분이 이유 없이 반가웠다. 그렇게 온전히 푸른 것은 처음 보았다. 그토록 광활하고, 빛나고, 생명력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래사장 위에 선 그는, 한참 동안 제 앞에 펼쳐진 수평선만을 바라보았다.
발등에 부딛히는 흰 포말이 기화되며 제 몸의 열을 앗아가는 감각조차 꼭 누군가가 간지럼을 태우는 것만 같은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황홀은 그의 발치에서 연녹색으로 시작해,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군청으로 이어진다. 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결코 바다가 무슨 색인지 말할 수 없을 테다. 어떻게 물이 녹주석 빛을 띄고,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공간이 겨우 몇 걸음 앞에서는 밤하늘과 같은 남옥의 색으로 보일 수 있는가! 그것이 시시각각 일렁이지만 않았더라면, 언다인은 바다를 일종의 공예품이라 여겼을 테다. 세상의 모든 녹빛, 푸름, 청색을 담은 거대한 광맥 위에, 태양광의 금테를 얹어 놓은 것이라고 정의했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한 치의 멈춤도 없이 시시각각 변화했기 때문에, 그는 바다를 하나의 움직임으로 칭했다. 물뿐만이 아닌, 파도에 쓸려내려가는 모래와 물결을 자아내는 바람들까지도, 그가 넋이 나간 채 서 있는 모든 공간이 바로 해역이었다.
갑작스런 해풍이 불어온다. 그의 머리칼이 소금기 섞인 바람을 품고, 선명히 일렁이는 적색의 물결로 뱉어낸다. 아가미를 훑어내리고, 지느러미 사이로 파고들며, 옷자락 틈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내 허공으로 사라지는 공기의 흐름과, 숨이 막힐 정도의 충만함.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결에, 언다인은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제 앞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그가 꿈꾸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그리던 삶이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것이 찬란이며, 살아있음이고, 환희에 찬 지상이다.
빛바랜 상아색 표면 위에 규칙적으로 드러난 검은 돌출부를 손끝으로 훑는 감각은 마치 거대한 화석의 척추를 만져 보는 것과 같았다. 흰 것 사이의 빈 공간에 추간판이 들이차고, 검은 것들 위에는 척수나 혈관 따위의 것들이 걸쳐졌을 것이다. 그 중 몇 개의 척추뼈들은 약간의 힘만 가해져도 푹 들어가며 소리를 냈다. 이것들이 네가 좋아하는 소리들이었구나. 지금은 단절되어 있지만, 함께 연주한다면 필히 온전한 화음을 자아낼 음정들이기에 너는 이것을 좋아하는구나. 허나, 제게는 그 모든 음계들을 한 번에 연주할 능력이 없었다. 이는 그의 손이 악기의 연주자보다 한참 작아서만은 아니었다. 억지로 곡을 만들어내는 대신, 알피스는 또 다시 모든 건반들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주인의 손길이 많이 닿은 것부터 아닌 것까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에 손을 대었다. 그 과정에서 무료함이 배어나오기 시작하기 직전이 될 때 쯤, 무언가의 전주곡처럼 발걸음이 들려온다. 갑주장화를 신은 걸음이다. 아스고어를 만나고 왔나? 곧이어 문이 열리고, 살짝 젖은 머리칼의 그는 웃으며 저를 바라볼 터였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당연하게도,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애초에 언다인은 자신을 두고 떠난 적이 없지 않았나! 알피스는 언다인의 집에 홀로 있어 본 적이 없다. 자신을 초대한 날의 그는 결코 제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았으므로,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이 어떤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전까지 들리던 당찬 발걸음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숨을 꾹 눌러 참았고, 족적이라 착각한 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빗소리. 무겁고도 경쾌하며, 무엇보다 자유로운 낙하. 어떠한 괴물의 소리도 나지 않는 공간을 채우는 것은 단 하나의 기현상이었다. 제 숨까지 멈춰버린다면, 그 순간 저 문이 열릴까. 하지만 알피스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대신, 매끈한 검은 덮개로 거실에 위치한 거대한 골격을 가리는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온전한 검정만이 덮인다. 영웅의 빈자리는 흰 것이 쉰 둘, 검은 것이 서른 여섯. 찬란한 이여, 그대는 도합 여든 여덟의 고독으로 영영 남을지어다.
메타톤은 아무 말 없이 제 머리를 억지로 돌려 제자리로 짜맞춰 놓았다. 목의 회전을 방해하는 전선들이 죄다 끊어졌으므로, 텅 빈 철제 머릿가죽 정도는 쉬이 재조립할 수 있었다. 합선에서 비롯된 불꽃이 그의 의식을 수놓고, 기계적 이명이 주는 감각은 이유 모를 전율을 이끌어냈다. 제 한쪽 뺨을 강타한 충격으로 인해 금이 간 두터운 렌즈. 유리질 각막에 맺힌 상은 언젠가 들여다본 낡은 만화경 -이 또한 내부가 깨졌기에 모든 상들이 일그러져 보이는- 의 것과 닮았다. 일렁이는 시야 앞에 비치는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분노에서는 일종의 숭고미까지 느껴지는 듯 싶었다. 무척이나 아득히 떨어져 있는 미지의 존재를 들어다보는 감각. 눈 앞에서 간혈적으로 번쩍였다 사라지는 광채가 정녕 별과도 같은 것이었던가? 갑작스런 충격에 비틀리다 못해 찢겨 나간 목덜미의 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곧 성운이고, 급박하게 제 몸의 항상성을 되돌리고자 작동하는 각종 기계들의 소리는 소행성대의 마찰음이었나?
당신이 내 눈 앞에 온 우주를 새겨 놓았다. 무척이나 고백 같은 -또는 고해, 그것도 아니라면 고통일지어다- 한 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허나, 그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윽고 머릿속으로만 되뇌이던 그 문장을 밝힐 광원들까지도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하며, 그는 짧은 죽음을 체감한다. 자신을 동경하는 쌍성, 자신을 만들어낸 백색왜성, 그 이외의 서서히 죽어가는 수백, 수천의 천체들과…… 마침내 제 시선 끝에 닿은 단 하나의 맥동변광성.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기는 눈앞의 세계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빛나던 그 존재. 그것을 향해 손이라도 뻗으려는 시도는 당연하게도 허사로 돌아갔다. 체액 같은 냉각수로 일렁이는 시야를 들여다보는 가운데, 그는 제 몸의 보조 전력마저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불야성의 주인은 이윽고 깊은 밤에 젖어들었으나, 그에게 칠흑을 선사한 이는 이미 발걸음을 돌려 사라진 뒤였다.
메타톤은 때때로 자신이 알피스를 창조했다는 상념에 빠지곤 했다. 당신은 나로써 이 연구소를 얻었고, 이 위치에 오른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왕은 그가 아닌 자신을 흡족해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은 겨우 피조물 따위가 아니다. 그 모든 이야기 속의 피조물들처럼, 그 또한 제 창조주에게 거역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한 감정은 소위 "자연적" 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모든 만들어진 것들이 제 어버이를 향해 저도 모르게 반항심을 품었더라면, 그는 되려 반항심을 품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에 가깝다. 모든 전형적 창조물들의 말로는 저를 만든 이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다-제 창조주와 사랑에 빠진다는 가장 고전적이며 파격적인 내용은 제쳐두도록 하자-. 그래서, 메타톤은 그들의 여로를 걸어야만 했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알피스보다 나은 모든 것들에 대해 속으로 적어내려가곤 했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은 차고 넘쳐요. 당신은 한 존재에게 누구보다 가치있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요. 내 자신감을 봐요, 당신은 이런 무대에는 결코 못 설 거 아냐. 물론 당신이 만들어준 몸이 없었다면 나 또한 저 위에 발을 들일 수 없었겠지만. 둘은 연구소에 함께 있었고, 함께 침묵을 지켰다. 그런 날들은, 분명 둘이 대화를 하는 날보다 많았다. 서로는 서로의 불완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우울한 피그말리온이며, 또 누가 비참한 갈라테이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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