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모든 내연에 대하여 _ W. 송강
그는 죽음이 결코 두렵지 않았다.
이 땅을 지킬 것을 함께 맹세한 동료 기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한때 사용하던 무기에 잿가루를 뿌려 준 것은 언다인이었다. 우그러진 쇳더미의 골 사이로 괴물의 희뿌연 재가 스미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꽤 오랫동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허나, 뒤이어 자신의 갑옷과 창에 자신이 흩뿌려지는 것을 상상해 본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제 한쪽 눈이 사라졌을 때, 언다인은 처음으로 비명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느 부상으로도 알지 못했던 괴로움이 온 몸의 신경을 타고 흘러넘치는 감각은 그가 몸을 뒤틀고, 악을 쓰게 했다. 허나, 그의 비명은 스스로의 목숨을 갈구하지 않았다. 또 언젠가, 자신의 혼에 간직한 소명과 심장에 깃든 감정을 저울질해 보던 언다인은 잠시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제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염려하던 그 이의 목소리에 무작정 긍정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그를 짓눌렀다. 제 생명이 외줄 위에 있다는 사실은 창을 든 시점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는 제 감정을 결국은 제쳐 둘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을 뿐이다. 그 밖의 여다른 것은 결코 두렵지 않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나는 죽지 않아. 언다인은 이 말을 입밖으로 내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엄중하게 눈을 내리감고 목소리를 낸 뒤에야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것은 경애하는 주군에게 바치는 맹세이다.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날 정도로 크게 외치는 것은 곁에 선 동료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연설이다. 마지막으로, 눈꼬리를 가벼이 접어올린 뒤 약간 코웃음치듯, 그러나 필히 신중하게 말을 건네는 일은 걱정이 드리운 벗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위로이다. 그렇기에, 그는 저 세 단어를 퍽이나 사랑했다. 제 모든 삶과 의지와 믿음이 담겨 있는 문장. 이는 창술을 연습하던 석산에서 함께 울부짖던 난기류를 닮은 동시에, 빗소리와 함께 연주하던 피아노의 선율을 담은 언사었다. 그는 이 말을 듣는 모두가 자신을 믿어 주었으면 했다. 다행히도, 언다인의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은 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 비치는 신뢰와 의리와 안도감을 함축한 표정을 위해서라면, 수백 번은 더 꺼내 보일 수 있는 서약이 바로 그 문장이다.
이미 한 번 흐트러진 것을 재조합했음에도, 전신이 부서지는 듯 하다. 이는 단순한 비유적 감각이 아니었으며, 그의 갑주장화 끝은 이미 녹아들어가는 중이다. 여남은 힘이 있었던 것처럼 맹렬히 공격을 퍼붓던 것도 잠시, 언다인은 그의 온 몸의 기운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저를 옭아매어 형체를 유지하던 조직 하나하나가 풀려 가며 이윽고 제 모든 것이 무엇도 아니었다는 양 무너지는 감각. 몇 번이고 그의 몸을 재구성하던 의지는 여느 때보다 강하게 요동친다. 어느새 과열된 제 심장과 왼쪽 눈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몸이 버티지 못해도 좋았다. 제 육신이 녹아내려 망가진 중갑주와 하나가 된다고 한들, 갑주 또한 무너져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흉물이 되어도 좋았다. 오로지, 제 앞의 존재를 막아서고자 하는 열망이 전신에 깃들어, 꼭 불태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와중에 있어서도, 겨우 세 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이토록 괴로운 일이었나? 그는 끊임없이 외쳤으나, 제 성대를 타고 나가는 것이 잘 벼린 비수라도 되었는지, 느껴지는 것은 목덜미가 수십 갈래로 찢어지는 고통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말했다. 제 평생토록 말한 죽지 않는다는 맹세를 이 순간 전부 외치겠다는 양, 그는 몇 번이고 제 삶만큼의 무게가 담긴 세 토막의 문장을 내뱉었다. 공간을 갈가리 도려내는 듯, 달궈진 의지가 그 끝마다 맺힌 그의 모든 것이 칼바람과 함께 휘몰아친다. 나는 죽지 않아, 나는 죽지 않아, 나는...... .
고통은 불씨요, 죽음은 불길이라.
필연적으로 메마를 땅에 마지막으로 흐른 것은 몇 줌의 잿가루였다. 이를 그가 사랑하던 것들에 뿌려줄 이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가 사랑한 모든 것에 그의 재를 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가 이 세계에 품은 정을 생각했더라면 적어도 육신이라도 많이 남겨 주었어야지! 카메라가 담는 프레임이 바뀌는 찰나 동안에도, 얄팍한 회백색의 잔여물은 이내 불살라진 이가 바라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뭉근한 열기로 인해 거칠게 대류하는 공기를 타고 위로, 저 위로, 언제 사그라들지 모를 기계 문명이 세워진 용암 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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