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 썸네일형 리스트형 [언다알피/알파인] 담청의 회고록 담청의 회고록 _w. 송강 "있잖아, 이제 모두가 나를 영웅이라고 불러." ... 불러. 어쩐지 빛을 잃은 것만 같은 하늘빛 꽃잎이 살짝 벌어지며 대답을 건넸다. 워터폴의 메아리꽃들은 긴 침묵에서 벗어났으나,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는 하나뿐이었다. 얕게 고인 웅덩이의 물이 제 가운을 적시는 줄도 모르고, 알피스는 한참 동안 메아리꽃 군락 사이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때때로 핫랜드에서 빠져나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워터폴의 몇몇 공간들을 거닐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찾으며, 또한 가장 죄악시한 행선지는 괴물들이 소원을 빌던 곳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낮아진 워터폴의 수위는 이제 알피스의 발목을 겨우 적실 정도였다. 맨발에 난 비늘 사이사이로 서늘한 물이 스미는 감각은 꼭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 _ Eroica : 英雄交響曲 _ Eroica : 英雄交響曲 / W. 송강 이는 시민의 뜻이다. 왕좌를 떠나던 그의 여로를 따라 속절없이 꺾인 황금꽃들은 어느새 다시 고개를 들고 자라났다. 이와 동시에, 언제부터인가 선왕의 것과 닮은 크기의 발자국이 남았던 곳부터 조금씩 잡초가 번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화단을 관리하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왕좌에 오르는 위대한 반군의 수장은 자신이 밟는 것 중 무엇이 황금꽃인지, 무엇이 잡초인지도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무쇠 갑주장화로 감싸인 발걸음은 그 아래에 스러지는 것이 무엇이 되건, 그저 앞으로 향할 뿐이다. 그가 과거를 잊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 분명하다. 지상으로 나갈 방법도, 만일 나갈지언정 인류를 이길 방법도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있는 의문이기 때문이었다. 언.. 탐사 기록 #31 - 붉은 알현 탐사 기록 #31 - 붉은 알현 _ W. 송강 식어버린 용암이 흐른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는 지하 발전소에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했다. 마치 그들이 만들어 낸 기계적 토르소 조각과 비슷한 모습을 띈 반파된 휴머노이드. 로봇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쉬웠다. 우리들은 이미 이 망국의 지도자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백 건은 넘게 지니고 있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다 떨어진 낙엽마냥 바닥에 깔려 있던 빛 바랜 전단지, 사방에 가득한 동일한 조형의 조각상, 이미 수 년의 유행이 지나버린 쇼의 일정표. 그들의 왕은 무척이나 향락적인 존재였다. 아니면, 그의 백성들이 내리 향락에 취해 있었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태양빛 대신 무대 조명이 있고, 정책적 시안 대신 음악과 예능, 농담만이 나름의 화젯거리었다는 .. [언다알피/알파인] Accolade _ Accolade / W. 송강 연구소 안에 감도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잘 닦인 흰 타일들이 그날따라 유독 더 서늘해 보였으며, 나직히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애써 둘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듯 했다. 한 손에 낡은 검을 든 알피스는 여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일들의 정보량은,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를 현저히 넘어섰기 때문이었을 테다. 언다인이 잔뜩 달궈진 갑옷에서 이유 모를 김이 펄펄 나는 상태로 연구소 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알피스가 끼얹어 준 얼음물 덕에 얼마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꽤나 시간에 쫓기는 듯 해 보이던 언다인은 그에게 예전에 쓰레기장에서 주웠던 칼을 들어서 아스고어가 하는 것을 재현해 달라는 나름의 부탁을 했고, 알.. 隻眼 _ 척안(隻眼) / W. 송강 회상 속에 남은 마지막 기억은 무언가의 분출이었다. 매상 좁다란 바늘구멍을 뚫고 나오려 하던 것이 안으로 푹 꺼짐에 따라, 그 불균등을 견디지 못한 내부의 체액이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감각. 혈액과 으깨진 유리체의 대부분은 구멍의 테두리를 통해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 중 유독 끈적하고 뜨거운 것만이 필사적으로 왼 얼굴을 붙든 손아귀 사이사이에 들러붙어 있는 듯 했다. 그는 혀가 찢어지다 못해 잇새가 갈라질 때까지 이를 악물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폐부에서 기체가 아닌 혈액이 배어나오는 감각이 들 만큼 비명을 질렀다. 제 눈에서 배어 나온 것이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이유 없는 확신은 그가 병상에서 희미한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눈 위의 어딘가가 여전히 아리다.. 이전 1 2 다음